불국사로 보는 불교의 세계관
오래된 건축물의 구조에 대한 궁금증..
사찰이나 궁궐의 배치
무엇인가가 그곳에 있다는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모든게 궁금해 졌습니다.
절에는 많은 이름의 건물들이 있고
그 건물들의 주인들도 다르다 합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불교에는 부처가 많을까?
불교의 많은 부처들은 현실 세계에 실존했던
석가모니 부처와 그의 말에 의해 전해진
부처들로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에 들게 되면서
그의 행적과 사상들을
체계화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일련의 과정에서 제자들의 서로 다른 해석과
기록이 불교의 번성과 함께 여러 문화와
융화되어 새롭게 읽혀지면서 각자의
영역과신앙의 위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상상의 산인 수미산이라 칭하는 카알리스산
부처란 깨달은자를 뜻 하므로
이 깨달은 자들은 과거에도 있었을 것이고
미래에도 있을것이라는 생각과
우리의 공간 안에 너무 멀어 갈 수 없는
다른 세계가 존재하리라는 생각...
그 밑자락에 우주의 중심이라는
수미산에 수많은 신들의 세상과 그밑에
인간세상과 지옥이 있다는 세계관..
이런 세계관을 현실세계에
옮겨 놓으려는 노력으로 탄생한
불국사
불국사의 창건및 복원
정확한 불국사의 건축 연대는
논란이 있지만 경덕왕 10년(751)에
김대설이 크게 중수하면서 청운교, 백운교,
석가탑, 다보탑 등을 건설했다는 것이
'불국사고금창기'의 기록이며 삼국유사의 기록은
좀 다르다 합니다.
1904년 사진
1914년 불국사 전경
528년 법흥왕 15년에 왕모 영제 부인의 발원
574년 진흥왕 어머니인 지소 부인이 중건하면서 비로자나불과 아미타불을 주조해 봉안
670년 문무왕 10년에는 무설전을 새로 지어 이곳에서 화엄경을 가르침
751년 경덕왕 10년 김대성에 의해 크게 개수되어 수십종 이상의 전각이 들어서지만
임진왜란으로 전부 소실되고 후대 왕들이 여러 차례 일부 건물만 중건 일제 강점기를 거쳐
1970년대에 정권의 정치적 의도로 황급히 복원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일제강점기 현장조사시 땅에 묻혀있는
좌경루 기초석을 발견 못하고 복원한 것을
1970년 현장조사때 발견하여 복원 하였습니다.
자경루의 발견
불국사의 아픔
1920년대 일제 조선 총독부에 의한
수리가 있었으나,보고서를 간행하지 않아
내용을 전혀 알 수 없고 1936년까지
충분한 조사와 연구도 없이 수리를 통해
석단과 회랑지 등에 변형을 초래하였고,
사리탑과 같은 중요 문화재등을
일본으로 반출하기 까지 하였습니다.
1970 복원과정은 우리의 발원과 노력과
기술에 의해 불국사의 복원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나 아쉬움도 남기 마련입니다.
구품연지와 우경루는 복원 못한 점,
문화재 보호 차원이라지만 동쪽 회랑에
입구를 내어 다보탑을 향해 절로
들어가게 한 점, 관광을 목적으로 경내에
연못을 조성한점 등...
불국사와 수미산
불국사는
『법화경』 석가모니불의 현실세계와
『무량수경』 아미타불의 극락세계,
『화엄경』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
세가지영역으로 나뉘어 건립된 사찰입니다.
대웅전을 축으로 남향에 세개의 문을
설치하여 인간세계와 신들의 세계를 구분하는
일주문을 지나 불법을 지키는 사천왕문을
거쳐 부처의 세계에 들어서는
불이문까지를 수미산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이런 구성은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사찰에서 지켜지며 지형에 따른 차이는
있겠으나 그 기본이 되는 세계관은
변형하지는 않습니다.
다음은 불국사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 볼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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